십여 년 전 태권브이 부활프로젝트가 진행된 적이 있었다. 외환 위기를 겪으면서 좌절한 이들에게 영웅이 필요했다. 그로부터 몇 년 뒤에는 김청기 감독의 만화영화 ‘로봇 태권브이’가 디지털로 복원되어 개봉되기도 했다. 김택기 작가도 다르지 않았다. 태권브이는 작가 스스로 위로 받으려 시작한 작업이었다.
이번에 전시된 태권브이 휴먼 시리즈인 <기타 연주자>와 <콘트라베이스 연주자> 등은 3D그래픽 기법의 디지털 드로잉 과정을 통해 디자인하고 스틸 구조물로 만들어졌다. 면을 이용하는 여느 입체작가들과는 달리 그는 선(線)을 이용한 작업을 해오고 있다.
라인으로 작업하면 메탈 특유의 강력함이 줄어든다. 휘어지기 쉽다는 단점 또한 강점으로 작용한다. 안이 비어 있어 껍데기만 남은 것처럼 보이는데 ‘비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었다.
“공간과 공간 사이로 공기는 물론이고 색과 배경들이
투과되어 흐르게 하려 합니다.
철이지만 성질이 전혀 다르게 표현될 수 있죠.
선으로 작업했기 때문에 태권브이처럼 강해 보이는 로봇도
연약해 보일 수 있었던 거고요”
우리의 영웅 태권브이는 늘 정의를 구현해왔다. 태권브이의 활약에 열광하면서 그 방법에 대해 의심을 갖지 않았던 것도 그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과 지구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자행되는폭력은 과연 정당한 것일까. 김택기 작가는 로봇 태권브이를 천하무적의 이미지로 다루지 않는다. 선을 이용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선으로 작업한 결과 우리 기억 속 태권브이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시키면서도 폭력적인 요소를 덜어낼 수가 있었다.
“로봇의 형상을 빌려왔지만 결국은 인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악기를 가져온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음악은 천사의 말입니다. 인간의 범주가 아니지요. 인간이 할 수 있는 행위 중 가장 아름다운 행위인 음악 연주를 로봇이 하게 함으로써 이질적인 것이 충돌할 때 생기는 또 다른 감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클래식 악기였을까.
“클래식 악기는 조형적으로 완벽하고 아름다워요. 악기를 연주하는 태권브이 앞에 서면 관람자들은 자신만의 선율을 떠올리게 될 겁니다. 그 음악이 클래식 음악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태권브이 시리즈를 정리하면서 교향악을 연주하는 태권브이 오케스트라를 재현하고 싶은 욕심도 있고요.”
언어 이전에 음악이 있었다. 음악은 언어와 이념을 뛰어넘는다. 뇌리 속에 흐르는 각자의 선율, 어떤 음악이든 그것은 천사의 말일 것이다. 비어 있는 몸통을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꽉 참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영웅을 통해 지금의 현실이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