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누군가와 마주해 ‘화가’라 소개를 하면 늘 같은 질문을 받는다. “어떤 경향의 그림을 그리시나요?” 그때마다 나는 참 말하기가 곤란하였다. 특정 화풍이나 경향? 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림에 대하여 말하는 내내 뭔가 제일 중요한 걸 빼먹은 기분이랄까?
역시, 화가가 자신의 그림을 ‘말’이나 ‘글’로 정밀하게 설명한다는 것은 ‘모순’과 ‘빈곤’을 자처함을, ‘그림은 말과 글을 필요치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이런 글쓰기가 나는 무척 쑥스럽고 어렵다. 그냥, 아직 그리고 싶은 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그리기’를 더 많이 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그림’으로 그리고, 그림이 완성되면, ‘텍스트’는 ‘그림’안에 고스란히 담겨있지 않을까?
마치 소중한 얘기나 비밀얘기를 듣거나 들려줄 때처럼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이듯, 그렇게 들여다보고 들여다보면 끝없이 열어 보여주는, 우리가 그리워하는 세계, 알 수 없는 세계, 우주의 비밀 같은? 순간순간 알고? 금방금방 망각? 하는 … 그래서 끝없이 그리고 그리는 거다. 봐 도 봐도 다함이 없게 ……
새하얀 화폭을 마주하고 있으면 가슴이 뛴다.
오늘은 무엇을 또 그려볼까?
‘그리운 세계를 그리는 것’ 그게 ‘그림’이다.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 부터 지금까지 줄곧 그림에 대한 나의 생각은 ‘그리운 세계의 표현’으로 일관 된다. ‘나’와 ‘관계’하는 모든 것에 대한 ‘관심표명’이 ‘그림’으로 그려진다.
‘지금 이 순간’
‘지금 여기’, ‘찰나의 순간들’을 포착하기.
‘생명력’과 ‘활력’으로 가득 넘치는 생생한 ‘살아있는 것’, ‘지금 이 순간’을 그리기.
‘다시 Life_Painting’ 이다.
‘그림에 등장하는 소재들의 짧은 단상’
얼굴- ‘내면의 풍경들’, ‘Wieder Spiegel’
(*wieder spiegel: 독일어로 번역하면 ‘다시 거울’이란 뜻인데, ‘끝없이 새롭게 비추는 거울’로 해석)
단 한순간도 정지하지 않는 얼굴들, 떠오르고 다시금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얼굴 안에 얼굴들. 서로 반영하고 투영하고 다시 비추는… 너와 나를 구체화 시키는 얼굴…
희미한 빛의 명료한 윤곽선. 내부의 빛과 그림자들의 아우라. 안에서 비추는 내면의 풍경들 ‘Wieder Spiegel’
숲과 같은 사람들 – ‘Forest of People’
나는 사람들에게 둘려싸여 있으면 마치 숲에 와 있는 것 같다.
기분 좋은 향기와 냄새, 편안함, 신비스러운 분위기, 때로 성스럽기도… 그러나 두려움으로 가득한 생생하게 살아있는 숲.
생명력과 활력으로 넘쳐나는 숲과 사람은 닮았다.
욕망하는 꽃 – ‘Everness’
때때로 무언가에 매료되는 찰나의 순간을 생각해보면 ‘침묵의 대기(Atmosphere)’에서 피어나지 않나? 꽃은 땅의 기운으로… 바람으로 … 태양아래 배회하는 부산물들로… ‘색’이 만들어지고, 오히려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의해 ‘형태’를 만든다.
매번 새롭게 ‘있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하는 꽃에서, 나는 ‘불멸’과 ‘영원성’을 느낀다.
Ewigkeit…, Everness…
2023년 8월 화실에서.
Selected Works